"경영과 예술 공통점은 끝없는 '精進'…내 인생, 은퇴는 없을 것"

입력 2024-03-17 18:49   수정 2024-03-18 01:09


인수합병(M&A) 승부사, 겁 없는 도전가, 꿈꾸는 모험가….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73)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서울 공덕동 36㎡(약 11평) 사무실에서 500만원 종잣돈으로 시작한 의류무역회사를 38년 만에 6조원 매출의 대기업으로 키워낸 자수성가 이력 때문일 것이다. 김 회장은 스스로를 ‘철저한 사업가’로 표현했다. 돈 못 버는 경영인은 직원에게도 또 국가에도 죄인이라는 게 첫 번째 경영 신념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인이기도 하다. 풀밭에 앉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시골 소년은 ‘글로벌 200대 컬렉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저명한 미술 작품 수집가로 성장했다. 한 점 또 한 점 찍어 고통스럽게 완성하는 예술처럼 경영도 끝없이 노력하고 정진해야 한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글로벌세아가 2022년 서울 삼성역 인근에 문을 연 갤러리 S2A에서 지난 15일 그를 만났다.


▷14년 만에 뵙습니다. 그대로시네요.

“머리만 하얘졌나요.(웃음)”

▷그새 회사는 매출 1조원 중견기업에서 6조원 대기업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밤낮없이 뛰어준 직원들 덕분이죠. 좋은 기회에 성사시킨 M&A도 폭발적인 성장의 토대가 됐습니다.”

▷‘플라잉맨(flying man)’이란 별명이 있네요.

“해외 진출로 키운 회사다 보니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요. 한창때는 1년 중 한 달 가까이를 기내에서 보냈어요.

#글로벌세아의 모태인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업자개발생산(ODM) 기업 세아상역은 중미·동남아 8개국에서 총 23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김 회장의 출장이 잦은 이유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항공사 누적 개인 마일리지만 400만 마일에 달한다. 지난달에도 미국 대형 의류 OEM 기업 인수를 타진하기 위해 2주간 로스앤젤레스(LA) 출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세계 1위인데 또 M&A를 하십니까.

“네. 작년부터 미국 스포츠 의류 제조업체 인수를 준비했습니다. 물류창고가 미국 3개 주에 걸쳐 있는 대형 회사예요. 온두라스, 엘살바도르에서도 대규모 공장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이르면 이달에 최종 사인합니다.”

▷세아상역, 클 만큼 크지 않았나요.

“도전 DNA가 뼛속에 뿌리 박힌 회사죠. 하나를 이루면 다음 목표를 세우고 과감하게 도전해왔습니다. 세아상역은 아직 스포츠·액티브 웨어 부문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않았어요. 인수 대상인 미국 회사는 팬데믹으로 매출이 쪼그라들었지만 수년 내 회복해 연매출 10억달러(약 1조3320억원)를 올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현상 유지는 곧 퇴보예요. ‘매출, 영업이익이 떨어지지 않고 유지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추락입니다. 기존에 보유한 사업과 비슷한 사업체를 합쳐 더 큰 파이를 만들고 지배력을 확대하는 볼트온(bolt-on) 전략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글로벌세아는 M&A 시장의 다크호스다. 2006년 인디에프(옛 나산)를 1500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STX중공업(플랜트부문·2018년), 태림그룹(제지·포장산업, 2020년), 쌍용건설(2022년), 전주페이퍼(제지산업·2023년) 등을 차례로 품에 안으며 그룹 외형을 불렸다. 일각에선 시너지 없는 확장이란 비판도 나왔지만 사업다각화를 위한 이종(異種) 업종 진출은 1위 기업의 숙명이라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M&A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라고들 합니다.

“M&A를 추진할 때는 몸과 마음이 굳고, 불안함에 불면의 밤을 보냅니다. 수면 중에도 절반은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죠. 과감한 도전과 과도한 욕심은 종이 한 장 차이죠. 냉철한 판단으로 그 경계를 구분하는 게 최고경영자의 역할입니다.”

▷전주페이퍼 인수는 언제 마무리되나요.

“5월에 잔금계약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태림페이퍼·태림포장 등 제지 계열사와의 시너지 모색은 물론 해외 공장도 설립해 수출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카톤(종이 재질) 박스를 사용하는 회사가 세아상역입니다. 그룹 차원의 원가 절감에 도움이 될 겁니다.”

▷쌍용건설은 공사 수익률이 높아졌습니다.

“PMI(인수 후 통합)팀이 비용 관리를 투명하게 했습니다. 담당 부사장에게 처음 부탁한 것은 60곳이 넘는 국내외 현장의 장비 사용, 인력투입 현황을 명확하게 관리해달라는 거였어요.”

▷해외 건설사업 확대 계획이 궁금합니다.

“세아상역이 진출해 있는 중남미 국가의 대통령들이 자국 내 인프라 확충과 관련해 쌍용건설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여러 가지 좋은 성과가 나올 겁니다.”

#김 회장의 인생을 관통하는 두 단어는 도전과 성취다.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바람개비를 들고 뛰어서라도 돌리고 만다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고 회고한다.

▷다시 20대가 된다면요.

“더 멀리, 더 높이 가고 싶어요. 최근 사업다각화를 했지만 세아상역은 몇십년간 의류업이란 한 우물만 팠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초반부터 더 폭넓은 시각으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업가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철저한 사업가요. 사업하는 사람이 돈을 못 벌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합니다. 그럼 세수가 적어지고 국가 유지도 힘들어지죠.”

▷결국 국가 걱정으로 이어지네요.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국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에 나가 보면 대한민국의 경쟁력에 더 자긍심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죠. 요즘엔 저출생 문제 때문에 잠이 안 올 정도입니다. 육아휴직을 자체적으로 2년으로 확대하거나 주요 지역별 거점 어린이집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내부적으로 검토해 직원들이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도록 독려하려 합니다.”

▷은퇴는 언제쯤 계획하십니까.

“은퇴를 생각하면 고인 물이 될 것 같습니다. (웃음) 창업주로서 조언하는 역할만 하는 것도 일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내 인생에 은퇴는 없을 겁니다.”
그림 그리기 좋아했던 소년…132억짜리 '김환기 우주'를 품다
컬렉터로 유명한 김웅기 회장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은 미술작품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미술 애호가다. 학창 시절 화가를 꿈꿨을 정도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김 회장이 아트컬렉터로 주목받은 건 2019년 11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김환기 화백의 점화 ‘우주’를 낙찰받으면서다. 당시엔 낙찰자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음해 S2A갤러리에 소장품을 공개하며 이 사실이 알려졌다.

김 회장은 김환기 예술세계의 정수라고 평가받는 ‘우주’가 꼭 한국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매 시작가는 64억원. ‘가격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사야 한다’는 생각으로 응찰하다 보니 최종 낙찰가가 132억원까지 치솟았다. 수수료와 운반비까지 포함해 김 회장이 들인 총금액은 당시 환율 기준으로 167억원에 달한다.

그가 한국으로 꼭 들여와야겠다고 생각한 또 다른 작품은 안중근 의사가 남긴 ‘용호지웅세기작인묘지태’(龍虎之雄勢豈作蚓猫之態: 용과 호랑이의 웅장한 형세를 어찌 지렁이와 고양이의 모습에 비견하겠는가·사진) 유묵이다. 역동적인 필체가 김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4억원대에 시작한 경매 낙찰가는 19억5000만원이었다. 이 작품 역시 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안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쓴 글”이라며 “죽음을 대면한 31세 청년의 기개가 이렇게 높을 수 있냐”고 감탄했다. 유묵 영인본(확대 복사본)은 제2사옥(S타워) 1층 로비에 걸었다. 수출기업인 만큼 보국(報國)에 대한 안 의사의 신념을 기려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영인본 양옆에는 한글 뜻풀이와 함께 안 의사 사진도 걸어둘 예정이다.

김 회장은 지난 1월 경영철학을 담은 에세이 <세상은 나의 보물섬이다>를 출간했다. 출장 중 틈틈이 기내에서 적은 메모가 도움이 됐다. 인세는 전액 아이티에 설립한 세아학교(S&H school)로 보낼 예정이다.

■ 김웅기 회장 약력

△1951년 충북 보은 출생
△1974년 전남대 섬유공학과 졸업
△1980~1985년 ㈜충방 근무
△1986년 세아교역 설립
△1999년 7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
△2004년 세아상역 회장 취임
△2011년 10억불 수출의 탑 수상
△2015년 지주회사 글로벌세아 출범
△2023년 세계 200대 컬렉터 선정


정리=이미경 기자/만난 사람=이정호 중소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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